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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라이프 (Nomad Life)

시카고 뺑소니 사고, 경찰의 협박과 변호사가 밝혀낸 진실

by wellnomadness 2026. 7. 14.

시카고 정착 후 첫 교통사고, 그리고 시작된 혼란

시카고에 정착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첫 교통사고를 겪었어요.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던 늦은 오후였고, 겨울이라 해가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어요. 도로에는 살짝 녹다 만 눈이 얼어붙어 있었던 것도 기억나요. 빨간 신호등에 멈춰 있었는데 뒤에서 다른 차가 그대로 충돌해왔어요. 영어도 서툴렀던 저는 그 순간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왔어요.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조차 몰랐어요. 일단 사고 난 부분을 전부 사진으로 찍었어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운전할 때는 사고가 나면 보험사에 전화하고 경찰을 부르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은 주마다 절차도 다르고 911에 걸어야 하는지, 지역 경찰서에 직접 걸어야 하는지조차 헷갈렸어요. 뒤차와 충돌하는 순간의 그 둔한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어요.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가 다시 좌석에 파묻히던 그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이게 진짜 사고라는 게 실감이 났어요.


"안 부러졌으니 그냥 가자" - 상대방의 황당한 태도

차에서 내린 상대방 운전자는 많이 부러지지 않았으니 그냥 가자고 했어요. 경찰에 전화하려 하자 지금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있어서 기다릴 수 없다며, 일을 마치고 관할 경찰서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정말 황당했지만 일단 상대방 이름, 전화번호, 차량 번호를 종이에 받아 적었어요. 경찰서에 전화하니 이번엔 직접 와서 이야기하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처음 겪는 미국 교통사고에서 황당함만 계속 쌓였어요. 상대방은 유유히 차를 몰고 사라졌고, 저는 도로 한쪽에 혼자 서서 이걸 정말 입증할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경찰서에서 겪은 두 번째 황당함 - "티켓 받고 싶으면 신고해"

사진과 받아 적은 정보를 들고 경찰서를 찾아갔어요. 담당 경찰관은 사고 접수를 해주는 것처럼 하면서, 사고를 접수하면 접수하는 사람도 티켓을 받게 되니 그래도 신고하고 싶냐며 겁을 줬어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정착한 지 얼마 안 된 저는 그 말에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경찰관은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해보고 정말 신고하고 싶으면 24시간 안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 결국 그냥 집으로 돌아갔어요. 경찰서를 나오면서도 이게 정말 정상적인 절차인지 의심이 들었지만, 낯선 나라의 낯선 시스템 앞에서 더 따질 자신이 없었어요.


다음날, 아픈 몸을 이끌고 변호사를 찾아가다

다음 날 아침 머리와 목이 아팠어요. 사고 후유증이었어요. 그제서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를 알아봤어요. 딱히 아는 변호사가 없어서 구글에 "시카고 교통사고 변호사"를 검색해 리뷰가 좋은 몇 곳을 추려봤고, 무료 상담을 해준다는 곳들 중 전화 통화 느낌이 가장 편안했던 사무실을 골라 찾아갔어요. 그렇게 만난 분이 시카고에서 정말 친절한 흑인 변호사 한 분이었어요. 변호사는 그 경찰관이 제 영어 실력을 보고 장난친 것이라고 설명해주면서, 이 부분은 법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어제 겪은 일이 정당한 절차가 아니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요. 변호사는 상담 내내 차분하게, 언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여러 번 강조해줬어요. 그 말 한마디가 그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몰라요.


변호사와 함께 다시 간 경찰서에서 드러난 진실

변호사와 함께 곧바로 시카고 경찰서로 향했어요. 경찰서 데스크에 변호사와 나란히 앉아 그동안 찍어둔 사고 현장 사진을 하나씩 꺼내 보여줬어요. 변호사가 상황을 설명하고 사진을 제출했고, 어제 제가 방문했던 시간의 CCTV까지 요청했어요.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 데스크에 앉아 사고 증거 사진을 제시하는 남성의 모습

그렇게 사고 접수가 이루어졌고,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어요. 상대방 차량은 도난 차량이었고, 알려준 이름과 전화번호도 모두 가짜였어요. 어제 저를 상대했던 경찰관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서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그냥 돌려보내려 했던 거예요. 결국 그 경찰관은 징계를 받았고, 제 사고는 뺑소니로 결론이 났어요. 변호사가 CCTV 확인을 요청하는 순간,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서류를 뒤적이던 그 경찰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그 후 3개월 동안 척추교정병원(카이로프랙틱)을 다녀야 했어요. 처음 몇 주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가서 목과 등을 교정받았고,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에도 재발을 막기 위해 스트레칭과 자세 교정 운동을 병행하며 서서히 방문 횟수를 줄여나갔어요. 변호사가 없었다면 저는 그저 겁먹고 넘어간 피해자로 남았을 거예요. 생각할수록 그 하루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이 뒤바뀌었는지 놀라울 정도였어요.


겁난다고 물러서지 않을 것

이 일을 겪고 나서 확실하게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겁이 난다고, 무섭다고 그 자리에서 주저하지 말자는 거예요.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내가 정당하다고 판단되면 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보는 거예요. 언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낯선 시스템이라는 이유로 눌러앉을 필요는 없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지금도 낯선 나라에서 비슷하게 부당한 상황을 만나면, 그 자리의 겁먹은 감정보다 확인 가능한 절차와 방법을 먼저 찾으려고 해요. 그 사고 이후로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도, 도착하면 가장 먼저 그 나라의 사고 신고 절차와 응급 연락처를 미리 찾아두는 습관이 생겼어요.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그런 정보를 찾을 여유조차 없다는 걸 그날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도로 위에 혼자 서 있던 순간이 떠올라요. 그때 만약 변호사를 찾아가지 않고 그냥 넘겼다면, 저는 아마 지금도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 시스템을 마음 한쪽에서 원망하며 살고 있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