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즈니스 생산성 (Productivity)

아침에 일을 시작하지 못하던 문제를 푼 방법

by wellnomadness 2026. 4. 8.

아침 의식을 만들어보려 했어요

낯선 도시에서 일을 시작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아침 이야기부터 해야 해요. 창밖에 처음 보는 거리가 펼쳐져 있으면 노트북을 여는 게 잘 안 돼요. 저는 이 문제를 루틴으로 풀어보려고 했어요. 앉기 전에 정해진 순서대로 몇 가지를 하면 뇌가 일할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거든요. 그래서 순서를 만들었어요. 세수를 하고, 가볍게 몸을 풀고, 오늘 할 일을 떠올리고, 물을 한 잔 마시고 앉는 식이었어요. 처음 며칠은 그럴듯했어요. 순서대로 하고 앉으니 뭔가 준비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기분이 오래가지 않았어요. 두 주쯤 지나니 순서를 다 밟고 앉아도 화면 앞에서 멍하니 있는 날이 생겼어요. 준비만 끝나고 정작 일은 시작되지 않는 거예요.


준비 단계가 늘어나기만 했어요

더 나빴던 건 순서가 자꾸 길어졌다는 점이에요. 잘 안 되는 날이 있으면 뭔가 빠졌나 싶어서 하나씩 더 붙였어요. 나중에는 앉기 전에 하는 일이 예닐곱 가지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 그것들을 다 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시간이 걸리니 시작이 늦어졌어요. 어느 날은 준비를 하다가 오전이 반쯤 지나 있었어요. 더 이상한 건 그중 하나를 빼먹은 날의 기분이었어요. 오늘은 제대로 못 갖췄으니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날 일이 안 되면 그것 때문인 것 같았고요. 시작을 돕겠다고 만든 게 시작을 막는 핑계가 되어 있었어요. 그때 생각을 정리했어요. 저에게 필요한 건 앉기 전에 하는 일이 아니라, 앉은 다음 손이 바로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였어요.


전날 일을 하다 만 채로 덮어요

그래서 방식을 바꿨어요. 지금 제가 하는 건 하나뿐이에요. 하루 일을 끝낼 때 딱 떨어지게 마무리하지 않아요. 일부러 조금 남겨두고 덮어요. 글을 쓰는 중이면 문장을 끝맺지 않고 중간에서 멈춰요. 코드를 만지는 중이면 다음에 고칠 자리에 표시만 해두고 나와요. 다 끝내고 덮는 게 기분은 훨씬 좋아요.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그 상태로 앉으면 무엇부터 할지 다시 정해야 해요. 그 판단이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요. 뭘 할지 정하는 동안 딴생각이 끼어들고, 그러다 보면 창밖을 보고 있어요. 반대로 하다 만 게 남아 있으면 앉자마자 손이 그리로 가요. 끝내다 만 문장을 마저 쓰는 건 결정이 필요 없거든요. 그 한 문장을 쓰고 나면 그다음은 알아서 이어져요. 저에게는 이게 지금까지 시도한 것 중에 제일 확실했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찜찜했어요. 마무리를 안 하고 덮는 거니까 어딘가 어질러놓고 나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자다가 그 부분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 찜찜함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다음 날 앉기 전부터 무엇을 이어서 할지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남겨두는 양은 중요해요. 너무 많이 남기면 다음 날 그 덩어리 앞에서 또 막혀요. 십 분에서 이십 분이면 마무리될 만큼만 남겨두는 게 제일 좋았어요.


책상을 창 반대쪽으로 돌렸어요

하나 더 바꾼 게 있어요. 숙소에 들어가면 책상 방향을 확인해요. 대부분의 숙소는 책상이 창을 마주 보게 놓여 있어요. 전망을 보라고 그렇게 둔 거겠죠. 그런데 저는 그 배치가 안 맞아요. 화면을 보다가 고개를 조금만 들면 바깥이 보이니까 시선이 계속 그리로 가요. 도착한 지 며칠 안 된 도시일수록 심해요. 그래서 책상을 옮기거나, 옮길 수 없으면 의자 위치라도 바꿔서 창을 옆이나 등 뒤에 둬요. 창을 등지면 화면에 빛이 반사되니 각도는 조금 신경 써야 하고요. 전망 좋은 방을 잡아놓고 왜 창을 등지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저는 일하는 시간과 보는 시간을 나누는 쪽이 편해요. 일할 때 창밖이 안 보이면 오히려 일을 빨리 끝내게 되고, 그러고 나서 밖에 나가면 그게 더 낫더라고요.

창을 등지도록 돌려놓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모습


그래도 안 되는 날은 있어요

이렇게 해도 안 되는 날이 있어요. 특히 이동한 다음 날이 그래요. 하다 만 것이 남아 있어도 손이 안 가고, 앉아 있어도 머리가 안 돌아가요. 예전에는 그런 날에 더 오래 앉아 있었어요. 오늘 못 한 만큼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과는 대체로 나빴어요. 앉아 있는 시간만 길고 나온 게 없으니 저녁에는 기분까지 상했어요. 요즘은 한 시간쯤 해보고 안 되면 접어요. 대신 그날은 손이 덜 가는 것들을 해요. 자료를 정리하거나, 밀린 메일을 처리하거나, 다음에 할 일을 적어두는 정도요. 이런 것들은 집중이 덜 필요해서 상태가 나빠도 되긴 돼요.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들이라 버리는 시간도 아니고요. 이동한 다음 날에 일정을 비워두면 좋겠지만 늘 그럴 수는 없어서, 대신 그날 할 일의 종류를 바꾸는 쪽으로 조정해요.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하다 만 것을 평소보다 더 눈에 띄게 남겨둬요. 다음 날 앉았을 때 뭘 해야 할지가 더 분명하도록요.


권했다가 안 맞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 방식이 좋아서 아는 사람에게 권한 적이 있어요. 저처럼 출퇴근 없이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얼마 뒤에 물어봤더니 자기한테는 전혀 안 맞는다고 했어요. 하던 걸 남겨두면 그게 계속 신경 쓰여서 저녁 내내 편치 않았대요. 결국 다시 다 끝내고 덮는 쪽으로 돌아갔다고 하더라고요. 듣고 보니 그럴 만했어요. 그 사람은 원래 마무리가 되어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었어요. 저는 반대예요. 저는 무언가를 새로 정하는 걸 힘들어하는 쪽이에요. 회의 시간을 잡는 것도,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도 오래 걸려요. 그러니까 이 방법이 저에게 맞았던 건 특별히 좋은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제가 결정을 미루는 성향이기 때문이었어요. 아침에 결정할 일을 하나 없애준 것뿐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누가 물어봐도 이렇게 해보라고는 잘 말하지 않아요. 대신 자기가 아침에 뭘 어려워하는지부터 보라고 해요. 저는 시작하는 게 아니라 정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었고, 그걸 알기까지가 오래 걸렸어요. 지금도 매일 잘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시작을 못 한 채 오전을 통째로 보내는 날은 확실히 줄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