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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라이프 (Nomad Life)

택시만 타다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한 뒤

by wellnomadness 2026. 4. 4.

낯선 도시에서 저는 택시부터 찾았어요

낯선 도시에 내리면 저는 오랫동안 택시나 차량 호출 앱부터 켰어요. 이유는 단순해요. 편하고, 실패할 일이 없으니까요. 목적지를 입력하면 문 앞까지 데려다줘요. 말을 못 해도 되고,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게 무서웠던 저에게 택시는 가장 안전한 이동 수단이었어요. 창밖으로 도시가 지나가긴 하는데, 그건 유리 안쪽에서 보는 풍경이었어요. 에어컨이 나오는 조용한 상자 안에 앉아 목적지까지 실려 가는 거예요. 편하긴 한데, 여행을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이상한 허전함이 생겼어요. 분명 그 도시에 다녀왔는데 그 도시를 잘 모르겠는 느낌이었어요. 공항에서 숙소로, 숙소에서 약속 장소로 택시로만 오가면 그 사이에 있는 도시는 통째로 건너뛰게 돼요. 점과 점만 찍고 그 사이의 선은 지워버리는 셈이에요.


뉴델리에서 오토릭샤를 탄 날

그 습관이 처음 깨진 건 인도 뉴델리에서였어요. 그날은 택시가 좀처럼 잡히지 않았어요.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길가에 서 있던 오토릭샤를 탔어요.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세 바퀴 달린 작은 탈것이에요. 문도 없고 창문도 없어서 옆이 뻥 뚫려 있어요. 타기 전에 기사와 요금을 정해야 했는데, 흥정에 서툰 저는 그 자체로 진땀을 뺐어요. 그런데 일단 출발하고 나니 흥정 걱정은 금세 잊었어요. 오토릭샤가 차와 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데, 그 뚫린 옆으로 뉴델리의 소리와 냄새와 열기가 그대로 들이닥쳤어요. 경적 소리, 매연과 뒤섞인 향신료 냄새, 사람들의 말소리가 유리창 없이 바로 제게 닿았어요. 조금 무섭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날 저는 처음으로 뉴델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택시 안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어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먼지투성이였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인도에서 웬만한 거리는 오토릭샤로 다녔어요. 요금을 정하는 게 여전히 어색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대충 얼마쯤이 적당한지 감이 생겼어요. 처음보다 덜 긴장하게 된 것만으로도 그 도시가 조금 편해졌어요.

뉴델리의 복잡한 도로를 달리는 노란 초록색 오토릭샤


트램은 도시를 숨기지 않아요

유럽에서는 트램이 그 역할을 했어요. 트램은 지하철과 완전히 달라요. 땅 아래로 숨지 않고 도시의 길 위를 그대로 달려요. 자동차와 같은 길을 쓰고, 정류장도 길 한복판에 있어요. 그래서 트램을 타면 도시가 눈높이에서 흘러가요. 창밖으로 사람들이 걷고, 가게가 문을 열고, 광장 한쪽에서 누가 악기를 켜는 게 다 보여요. 지하철은 빠르지만 그 시간 동안 저는 어두운 터널 벽만 봐요. 어디를 지나는지도 모른 채 목적지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면, 방금 지나온 구간이 제 기억 속에서 통째로 비어 있어요. 반면 트램은 그 구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여줘요. 조금 느리지만 그 느림이 오히려 좋았어요. 목적지까지 가는 이십 분이 그 도시를 구경하는 이십 분이 되니까요. 급하지 않은 날이면 저는 일부러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서 나머지를 걸었어요.


사람들의 하루가 보여요

대중교통을 타면 그 도시 사람들의 하루가 보여요. 이건 택시에서는 볼 수 없는 거예요. 아침 출근 시간의 트램은 어느 도시나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요. 다들 피곤한 얼굴인 건 같은데, 손에 든 물건과 입은 옷과 통화하는 언어가 달라요. 어떤 도시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조용하고, 어떤 도시는 낯선 사람끼리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요. 노인들이 주로 몇 시에 타고 어디서 내리는지, 학생들이 언제 우르르 몰리는지, 장바구니를 든 사람이 많아지는 시간대가 언제인지 같은 것들이 며칠만 타보면 눈에 들어와요. 그건 그 도시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창이에요. 택시를 탈 때는 기사와 저 둘뿐이라 낯선 도시에 저 혼자 뚝 떨어진 기분이었는데, 트램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요.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지만, 그 무심한 틈에 끼어 있는 것만으로 그 도시가 조금 덜 낯설게 느껴졌어요. 잠깐이라도 구경꾼이 아니라 그 도시를 채우는 여럿 중 하나가 되는 셈이니까요.

유럽 트램 안에서 창밖 거리를 바라보는 승객들의 모습


반대 방향 트램을 탄 날

물론 처음부터 매끄러웠던 건 아니에요. 반대 방향 트램을 타서 엉뚱한 종점까지 가버린 적도 있어요. 어느 유럽 도시에서였는데, 앱을 본다고 봤는데도 방향을 반대로 잡은 거예요. 한참을 가다 창밖 풍경이 점점 낯설어지고 나서야 잘못 탄 걸 알아챘어요. 처음엔 당황했는데, 내려보니 그곳이 가이드북에는 나올 리 없는 아주 평범한 동네였어요. 빵집과 세탁소가 있고, 작은 광장에 동네 사람들이 앉아 있었어요. 관광객은 저뿐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그 동네가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계획에 없던 곳이라 아무 기대 없이 봤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 도시의 진짜 얼굴처럼 느껴졌는지도 몰라요. 반대편에서 다시 트램을 타고 원래 가려던 곳으로 갔지만, 그날 제일 좋았던 건 정작 그 엉뚱한 종점이었어요. 그 뒤로는 트램을 잘못 타도 크게 당황하지 않아요. 어차피 반대편에서 다시 타면 되고, 그사이에 못 볼 뻔한 동네를 하나 더 보게 되니까요.


스쳐 가는 것과 함께 흐르는 것

택시로만 다닐 때 저는 도시를 스쳐 지나갔어요.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도시와 같은 속도로 흘렀어요.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커요. 스쳐 가는 사람은 도시의 겉만 보고, 같이 흐르는 사람은 그 안으로 조금 들어가요. 물론 택시가 필요한 날도 있어요. 급하거나, 짐이 많거나, 밤늦게 낯선 곳에 있을 때는 저도 앱을 켜요. 대중교통이 늘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다만 시간이 조금 있고 급하지 않은 날이라면, 저는 그 도시의 트램이나 버스를 먼저 찾아보게 됐어요. 조금 헤매도 괜찮아요. 헤매는 동안 본 것들이 결국 그 도시에 대한 기억으로 남으니까요. 택시로 열 번을 오간 도시보다 트램으로 한 번 헤맨 도시가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걸 여러 번 겪었어요. 목적지에 빨리 닿는 것보다, 그 도시를 어떻게 지나왔는지가 남는 게 저에게는 더 값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