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골목을 세 번째 돌고 있었어요
페스의 미디나는 들어서자마자 길을 잃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들었어요. 그 말을 가볍게 여겼던 게 실수였어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지도 앱을 켰는데도 같은 골목을 세 번째 돌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미디나 안쪽은 GPS 신호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어요.
해가 완전히 저물고 나니 골목이 전부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좁은 벽 사이로 늘어선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고,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어요. 낮에 봤던 활기찬 시장 골목이 밤이 되니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가로등도 거의 없어서 골목 안은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어요. 발밑에 깔린 돌바닥도 울퉁불퉁해서 걷는 속도를 자꾸 늦춰야 했어요. 벽을 더듬듯 손을 짚으며 걷다 보니, 평소라면 10분이면 끝날 거리를 몇 배는 느리게 걷고 있었어요.
지도 앱이 무용지물이었다
구글 지도를 열어봤지만, 미디나 안쪽은 골목 구조가 지도에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았어요. 파란 점이 가리키는 위치와 실제 제가 서 있는 골목이 전혀 달랐어요. 몇 번이고 방향을 바꿔봤지만, 오히려 더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휴대전화 배터리도 20퍼센트 남아 있었어요. 지도 앱을 계속 켜두면 금방 꺼질 것 같아 불안했어요. 숙소 주소를 미리 저장해둔 메모를 찾아봤지만, 영어 주소로는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지도 앱을 끄고 감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낮에 지나왔던 특징적인 가게나 벽화를 떠올리며 거슬러 올라가려 했는데, 어둠 속에서는 그마저도 구분이 어려웠어요. 점점 초조함이 커졌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벽, 같은 문양의 타일 장식이 반복해서 보이는 것 같았어요. 정말 같은 길을 돌고 있는 건지, 그냥 비슷하게 생긴 다른 골목인지조차 구분이 안 됐어요. 머릿속으로 숙소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봤지만, 방향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어요.
현지 소년이 길을 안내해줬다
막막해하던 중, 골목 한쪽에서 놀고 있던 현지 소년 두 명이 저를 쳐다봤어요. 번역 앱으로 숙소 이름을 보여주며 도움을 청했어요. 소년들은 그 숙소를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어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몇 번이나 꺾어 들어가는데, 혼자였다면 절대 찾지 못했을 길이었어요. 소년들은 익숙하게 지름길을 아는 듯 거침없이 걸었어요. 10분쯤 지나자 익숙한 숙소 입구가 눈에 들어왔어요.
걷는 동안 소년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웃었고, 그 모습을 보니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어요. 가끔 뒤돌아서 제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해주는 모습도 고마웠어요. 말은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그 배려만큼은 분명하게 전해졌어요.
작은 보답과 큰 안도감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가진 현금을 조금 건넸어요. 소년들은 환하게 웃으며 받아 들고 다시 골목 속으로 뛰어갔어요.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숙소 주인에게 그날 일을 이야기하니 웃으며 "미디나에서 길을 잃는 건 통과의례"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저만 겪은 특별한 불운이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됐어요.
숙소 주인은 몇 년 전 자신도 처음 미디나에 왔을 때 거의 두 시간을 헤맸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묘하게 안심이 됐어요. 심지어 평생을 그 도시에서 산 사람조차 처음에는 길을 잃는다는 사실이, 그날의 당황스러움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줬어요.
다음 날부터 생긴 요령
다음 날부터는 미디나에 들어갈 때마다 숙소 명함을 챙겼어요. 길을 물어볼 때 명함을 보여주면 훨씬 빠르게 이해시킬 수 있었어요.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는 반드시 숙소로 돌아가는 습관도 생겼어요.
숙소 주인이 추천해준 방법도 있었어요. 미디나에 들어갈 때마다 주요 교차로 몇 곳의 가게 간판 색깔을 사진으로 찍어두는 거였어요. 돌아오는 길에 그 사진들을 순서대로 보면서 역추적하면 훨씬 수월하다고 했어요. 실제로 다음 날 적용해보니 꽤 효과가 있었어요.
숙소 근처 몇 개의 랜드마크도 외워뒀어요. 특정 색깔의 문, 독특한 모양의 분수대 같은 것들을요. 지도 앱보다 이런 시각적 기준점이 미디나 안에서는 훨씬 더 유용했어요.
길을 잃는다는 것의 다른 의미
그날의 공포는 꽤 생생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덕분에 만난 소년들과의 짧은 순간이 여행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길을 잃지 않았다면 겪지 못했을 일이었어요. 완벽하게 길을 외워 다녔다면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친절이었어요.
지금도 새로운 미디나나 복잡한 구시가지를 걸을 때는 그날의 긴장감이 떠올라요. 하지만 동시에, 길을 잃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함께 생겼어요. 그 균형이 지금의 저를 조금 더 대담하게 걷게 만들어줘요.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보다, 길을 잃었을 때 당황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결국 더 중요하다는 걸 그 밤에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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