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한국에 갔어요
미국에 자리를 잡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일하다 보니, 정작 한국에 가는 일이 뜸해졌어요. 몇 년 만에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상하게도 낯설다는 거였어요. 제가 나고 자란 나라인데 공항 구조가 바뀌어 있었고, 안내 화면도 처음 보는 방식이었어요.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조금 멍했어요.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결제였어요. 택시를 타려는데 카드 단말기에 제가 모르는 방식이 떠 있었고, 편의점에서는 다들 휴대전화를 대고 나가더라고요. 저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몇 년 사이에 일상이 이렇게 달라졌구나 싶었어요. 해외에 오래 있으면 그 나라 소식은 뉴스로 접하지만, 생활의 결이 바뀌는 건 뉴스에 안 나오거든요.
그 며칠 동안 저는 한국에서 이방인처럼 지냈어요. 말은 통하는데 방식을 모르는 상태요. 외국에서 겪던 낯섦과는 결이 달랐어요. 외국에서는 낯선 게 당연하니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당연히 익숙할 거라고 생각하고 갔으니 그 간극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가기 전에 목록부터 만들어요
그 방문 이후로 저는 한국에 가기 전에 반드시 목록을 만들어요. 해외에서는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을 평소에 메모해 두었다가 그 며칠에 몰아서 해결하는 거예요. 은행 창구에서 직접 해야 하는 일, 인증 수단을 갱신하는 일, 관공서에서 받아야 하는 서류 같은 것들이요. 이 목록이 없으면 반드시 뭔가를 빠뜨리고 돌아와요. 저도 처음에는 그냥 갔다가 정작 중요한 걸 못 하고 온 적이 있어요.
목록을 만들 때는 각 항목에 필요한 서류와 준비물도 같이 적어요. 은행에 갈 때 신분증만 들고 갔다가 다른 서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온 경험이 있거든요. 짧게 머무는 일정에서는 한 번의 헛걸음이 하루를 잡아먹어요. 그래서 가기 전에 각 기관에 전화로 확인하는 것까지 준비 과정에 넣었어요.
일정도 앞쪽에 배치해요. 도착 다음 날부터 이틀 정도를 이런 일 처리에 쓰고, 남은 날을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는 데 써요. 처음에는 반대로 했다가 마지막 날에 몰아서 하려니 은행이 문을 닫았거나 서류가 늦게 나와서 낭패를 봤어요. 관공서와 은행은 평일에만 열린다는 걸 일정 짤 때 늘 염두에 둬야 해요.

시차와 컨디션이 발목을 잡아요
한국 방문에서 놓치기 쉬운 게 시차예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면 시차가 열몇 시간이라 밤낮이 완전히 뒤집혀요. 도착 첫 이틀은 새벽에 깨고 낮에 졸려요. 그런데 저는 짧은 일정이 아까워서 도착 다음 날부터 약속을 빡빡하게 잡곤 했어요. 결과는 뻔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멍한 상태였고, 정작 중요한 대화는 기억이 흐릿했어요.
지금은 도착 다음 날 오전은 비워둬요. 그리고 첫 이틀은 중요한 미팅이나 결정을 요하는 일정을 넣지 않아요. 몸이 적응할 시간을 주는 거예요. 짧은 일정에 하루를 비우는 게 아깝게 느껴지지만, 그 하루가 나머지 며칠의 질을 결정하더라고요.
음식도 조심해요. 오랜만에 먹고 싶었던 것들이 많아서 첫날부터 몰아서 먹게 되는데, 몇 년 동안 다른 식습관으로 지낸 몸이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저는 반가운 마음에 매운 것과 기름진 것을 연달아 먹었다가 이틀을 고생한 적이 있어요. 낯선 나라에 도착했을 때 조심하는 것처럼,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에서도 속도를 조금 늦출 필요가 있더라고요.
일은 완전히 멈추지 않아요
혼자 일하니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일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아요. 그래서 가기 전에 고객들에게 미리 알려요. 어느 기간에 한국에 있고, 시차가 이렇게 바뀌니 응답 가능한 시간이 언제라고요. 미국 고객 기준으로는 제가 한국에 있으면 오히려 새벽에 답장이 가는 셈이라, 이 안내가 없으면 상대가 혼란스러워해요.
그리고 그 기간에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지 않아요. 진행 중인 것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잡고, 마감은 방문 전이나 후로 밀어둬요. 한국에 있는 며칠은 물리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집중해서 작업할 시간이 거의 안 나거든요. 이걸 모르고 평소처럼 일정을 잡았다가 양쪽 다 제대로 못 한 적이 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생각보다 준비가 필요했어요. 몇 년 만에 만나면 서로 안부를 묻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가요. 그런데 저는 처음 몇 번은 하루에 서너 명씩 약속을 잡았어요. 짧은 일정이니 최대한 많이 만나자는 생각이었죠. 결과는 모두와 겉핥기식 대화만 하고 온 거였어요.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누구와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더라고요.
지금은 하루에 한 명이나 두 명만 만나요. 대신 시간을 넉넉히 잡고요. 오랜만에 보는 사이일수록 자리를 잡고 몇 시간 이야기해야 서로의 근황이 제대로 오가거든요. 만나는 사람 수를 줄이는 게 아쉽지만, 얕게 여러 명보다 깊게 몇 명이 남는 게 많았어요.
그리고 만나기 전에 상대의 근황을 미리 떠올려 봐요. 몇 년 사이에 결혼했거나 이직했거나 아이가 생겼을 수 있잖아요. 제 소식만 잔뜩 이야기하고 오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보고가 되니까요. 해외에 있으면 소식을 놓치기 쉬워서 이 부분은 의식적으로 챙기려고 해요.
돌아올 때 챙기는 것들
돌아오는 짐에는 다음 몇 달을 버틸 것들을 넣어요. 늘 먹던 상비약,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생활용품 같은 것들이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낯선 도시에서 아플 때 익숙한 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커요. 그리고 여권용 사진처럼 서류 만들 때 필요한 것들도 이때 만들어 와요.
가족들과의 시간도 미리 계획해요. 처음에는 일 처리를 하다 보면 남는 시간에 만나면 되겠지 했는데, 그러다 보면 정작 얼굴 볼 시간이 며칠 안 되더라고요. 지금은 목록을 만들 때 가족과 보낼 날을 먼저 표시하고 그 사이에 일정을 끼워 넣어요. 몇 년에 한 번 가는 걸음이라 순서를 그렇게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두 곳 다 조금씩 낯선 사람
오래 밖에서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두 곳 모두에서 조금씩 이방인이 돼요. 미국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이고, 한국에서는 결제 방식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죠. 처음에는 그게 서글펐어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기분이었거든요.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두 곳 모두 제 자리가 있고, 다만 각각에서 조금씩 배워야 할 게 남아 있는 상태라고요. 한국에 갈 때마다 새로 익히는 것들이 생기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그 도시의 방식을 배우는 것과 똑같은 과정이니까요. 다음에 갈 때는 결제 방식부터 미리 알아보고 가려고요.
그리고 요즘은 방문 간격을 너무 벌리지 않으려고 해요. 몇 년씩 두면 낯섦이 커지고 그만큼 다시 익히는 데 드는 노력도 커지거든요. 일 년에 한 번 정도 짧게라도 다녀오면 변화의 폭이 작아서 따라잡기가 쉬워요. 비용과 일정이 만만치 않지만, 오래 밖에서 지낼수록 돌아갈 곳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여러 번 느꼈어요. 그 연결은 저절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들여 관리해야 하는 것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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