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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시카고에서 침대 밖으로 나오기까지: 국제 전화카드로 버티던 시절과 아침 산책의 시작

by wellnomadness 2026. 7. 18.

가족도 친구도 없는 도시에 혼자 남겨진 기분

미국 정착 초창기, 시카고에서 보낸 시절 이야기예요. 그때 저는 멘탈이 가장 바닥까지 내려갔던 시기를 겪었어요. 가족도 그립고, 친구도 그립고, 일은 많은데 돈은 되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일에 파묻혀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정말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한국에서는 전화 한 통이면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가족은 늘 가까이에 있었어요. 그런데 시카고에서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어요. 낯선 언어, 낯선 시스템, 낯선 거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느낌이었어요. 몸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었는데, 마음 붙일 곳이 없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특히 주말이 무서웠어요. 평일에는 일이라도 붙잡고 있으면 시간이 갔는데, 주말에는 하루가 통째로 비어 있었어요. 다들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날에 저 혼자만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하루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국제 전화카드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영상통화는커녕 메신저도 변변치 않던 때라, 한국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국제 전화카드였어요. 마트에서 전화카드를 사서, 카드 뒷면의 번호를 긁어 접속 번호를 누르고, 긴 핀 번호를 입력하고 나서야 한국으로 전화를 걸 수 있었어요. 그 몇 분의 통화가 하루의 최대 즐거움이었어요. 문제는 시차였어요. 시카고가 저녁이 되어야 한국이 아침이 되니까, 낮 동안에는 전화를 걸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매일 저녁 시간을 기다렸어요. 일을 하다가도 시계를 보면서 한국이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가족에게 전화하고 친구에게 전화하는 게 하루의 낙이었어요. 전화카드 잔액이 줄어드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끊기가 아쉬워서 몇 분을 더 붙잡고 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통화가 끝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방이 다시 조용해졌어요. 방금까지 웃으면서 통화했는데, 끊고 나면 그 침묵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다음 날 저녁에 또 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버텼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전화 한 통이 저를 지탱해주던 가느다란 줄이었던 것 같아요.


침대에 누워 TV만 틀어놓고 보낸 일주일

그러다 가장 바닥을 찍은 시기가 왔어요. 어느 날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어요. 그냥 멍하니 침대에 누워서 TV만 틀어놓고 가만히 있었어요. TV를 보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방이 조용한 게 싫어서 소리를 틀어놓은 것에 가까웠어요. 밥도 대충 때우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씻는 것도 미루고, 그렇게 일주일을 통째로 보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외로움과 불안이 쌓이고 쌓여서 몸이 멈춰버린 상태였던 것 같아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태평양을 건너왔는데,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까지 겹쳤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 일주일이 끝나갈 무렵이었어요. 저녁에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가족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이런 모습을 알면 얼마나 걱정할까 싶었어요. 전화기 너머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끊고 나서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어요. 이렇게 지내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그날따라 유난히 무겁게 남았어요.

이른 아침 조용한 시카고 주택가 거리를 혼자 걷는 남성의 뒷모습


아침 산책이 끌어올려 준 일상

그때 시작한 게 아침 산책이었어요. 거창한 결심은 아니었어요. 일단 침대에서 나가는 것부터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무작정 동네를 걸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걷기만 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어요.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걷다 보면 밤새 뒤엉켜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됐어요. 침대에서 뒤척이며 불안해하던 시간이,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바뀐 거예요.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도 있었어요. 매일 같은 시간에 걷다 보니 동네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가볍게 눈인사만 하다가, 나중에는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어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도시에서, 아침 산책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거예요. 외로움에 갇혀 있던 방문을 열고 나온 셈이었어요. 몸을 움직이니까 일도 조금씩 손에 잡히기 시작했어요.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 책상에 앉으면, 침대에서 바로 하루를 시작하던 때와는 집중력 자체가 달랐어요. 불안함에 짓눌려 있던 하루가, 걷는 것 하나로 굴러가기 시작한 거예요.


지금도 아침마다 걷는 이유

그 이후로 아침 산책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습관이 됐어요.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는 지금도,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아침에 동네를 걷는 것부터 시작해요. 혼자 생각을 정리할 때 아침 산책만큼 좋은 게 없다고 느껴요. 복잡한 고민이 있을 때도, 큰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도, 일단 걸으면서 생각하면 머릿속이 훨씬 맑아져요. 그리고 그 시절을 지나오면서 배운 게 하나 있어요. 마음이 바닥일 때 필요한 건 대단한 해결책이 아니라, 침대에서 나가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라는 거예요. 저에게는 그게 아침 산책이었어요. 돌이켜보면 돈이 든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에요. 운동화를 신고 문밖으로 나간 것, 그게 전부였어요. 국제 전화카드로 하루의 즐거움을 버티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아침 산책 습관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잘 알아요. 혹시 낯선 곳에서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 있다면, 내일 아침에 일단 문밖으로 나가서 동네 한 바퀴만 걸어보면 좋겠어요. 저는 그 한 바퀴에서부터 다시 시작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