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기를 태워먹은 게 그해에만 두 번이었어요. 둘 다 전압 때문이었고, 둘 다 노트북이 멈춰 있는 시간이 하루를 넘겼어요. 변압기 하나만 더 챙겼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는데, 그걸 깨달은 건 두 번째 사고를 겪고 나서였어요. 전자제품을 챙기는 일이 옷가지 챙기는 일만큼이나 신경 써야 하는 영역이라는 걸, 그 두 번의 사고로 뼈저리게 배웠어요.
첫 번째 사고는 방콕 숙소 콘센트에서 났다
방콕에 도착한 첫날 저녁, 짐을 풀자마자 노트북 충전기를 꽂았어요. 태국 콘센트는 한국과 모양이 비슷해서 플러그가 그냥 들어갔어요. 문제는 모양이 아니라 전압이었어요. 한국은 220볼트, 태국도 220볼트라 멀티어댑터만 챙기고 변압기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충전기 자체가 몇 년 전 미국에서 산 110볼트 전용 제품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어요.
플러그를 꽂자마자 "탁" 하는 작은 소리가 났고, 충전기 몸체에서 옅은 탄내가 올라왔어요. 황급히 플러그를 뽑았지만 이미 늦었어요. 전원 버튼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당장 다음 날 오전 화상 미팅이 있었는데, 노트북 배터리는 23퍼센트밖에 남아 있지 않았어요. 숙소 리셉션에 내려가 혹시 여분 충전기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당연히 없었어요.
그날 밤 근처에 24시간 여는 전자상가를 검색해 택시를 탔어요. 다행히 같은 브랜드의 범용 충전기를 파는 가게를 찾았고, 가격은 평소의 2배 정도였지만 따질 처지가 아니었어요. 숙소로 돌아와 배터리가 70퍼센트 정도 찰 때까지 뜬눈으로 지켜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음 날 미팅은 다행히 무사히 끝났지만, 그 뒤로 며칠 동안은 콘센트에 뭔가를 꽂을 때마다 괜히 긴장이 됐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자기도 베트남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노마드로 떠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압 사고가 생각보다 흔한 에피소드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다들 한 번쯤은 콘센트 앞에서 작은 불꽃을 본 경험이 있다는 게 묘하게 위안이 됐어요. 그 뒤로는 새 숙소에 들어가면 콘센트에 뭔가 꽂기 전에 벽에 붙은 전압 표기부터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두 번째 사고는 여행용 어댑터를 과신해서 났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바로 범용 변압기를 하나 샀어요. 그런데 몇 달 뒤 멕시코시티로 넘어가면서 방심이 또 문제를 일으켰어요. 멕시코는 110볼트를 쓰는 나라라 변압기 없이 어댑터만 꽂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요. 플러그 모양만 바꿔주는 여행용 어댑터와, 전압 자체를 바꿔주는 변압기가 다른 물건이라는 걸 그때까지도 헷갈리고 있었던 거예요.

멕시코시티 숙소는 방콕보다 훨씬 오래된 건물이었어요. 벽에 달린 콘센트도 군데군데 색이 바래고 헐거워 보였어요. 체크인하고 짐을 풀면서도 전기 배선이 괜찮을지 살짝 걱정이 됐는데, 그 걱정의 방향이 틀렸던 셈이에요. 문제는 건물의 배선이 아니라 제가 가져간 가전제품의 입력 전압이었거든요. 한국에서 썼던 익숙한 물건을 그대로 챙겨왔다는 사실 하나가 생각보다 큰 변수였어요.
이번에 문제가 된 건 노트북 충전기가 아니라 헤어드라이어였어요. 한국에서 220볼트 전용으로 산 제품을 110볼트 콘센트에 꽂았더니, 전압이 모자라 처음엔 바람이 약하게 나오다가 몇 초 뒤 모터에서 타는 냄새가 났어요. 다행히 노트북은 자동 전압 감지 기능이 있는 충전기로 이미 바꿔둔 뒤라 무사했지만, 헤어드라이어 하나를 또 버리게 됐어요. 머리를 반쯤 말리다 멈춘 채로 거울 앞에 서서, 또 이런 식으로 뭔가를 태워 먹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어요.
두 번의 사고를 겪고 나서야 전자제품 뒷면에 적힌 작은 글자를 챙겨 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INPUT: 100-240V"라고 적혀 있으면 어디서든 어댑터만으로 충분하고, 특정 전압만 적혀 있으면 반드시 변압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제대로 배웠어요. 이렇게 간단한 걸 왜 진작 확인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사소한 차이였어요.
멕시코시티의 전파상에 새 헤어드라이어를 사러 갔던 날도 기억에 남아요. 스페인어로 전압 문제를 설명하느라 손짓 발짓을 다 동원했는데, 가게 주인이 제 말을 듣더니 피식 웃으며 진열대에서 여행자용 저전력 제품을 하나 꺼내줬어요. 아마 비슷한 사연으로 찾아온 여행자가 저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그 제품은 지금도 잘 쓰고 있는데, 살 때마다 그날의 탄내가 떠올라서 괜히 한 번씩 웃게 돼요.
지금은 짐 싸기 전에 전압부터 확인한다
요즘은 새 도시로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나라의 전압을 검색하는 거예요. 가지고 있는 전자제품을 하나씩 떠올리며 어떤 게 자동 전압 감지 기능이 있고 어떤 게 아닌지 머릿속으로 체크해요. 노트북, 휴대전화 충전기,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는 대부분 100볼트에서 240볼트까지 자동으로 맞춰주는 제품이라 걱정이 없지만, 헤어드라이어나 전기면도기처럼 전압이 고정된 가전제품은 여전히 변압기가 필수예요.
가방에는 이제 멀티 플러그 어댑터와 소형 변압기를 항상 같이 넣고 다녀요. 부피가 조금 늘긴 했지만, 전자제품 하나를 또 태워 먹는 비용과 번거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두 번의 작은 사고가 저한테 가르쳐준 건 결국 여행용 어댑터와 변압기는 전혀 다른 물건이라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헷갈리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이었어요.
휴대전화에는 나라별 전압을 정리해둔 메모를 하나 만들어뒀어요. 이미 다녀온 나라는 전압과 콘센트 모양을 적어두고, 새로 갈 나라가 생기면 출발 전에 미리 검색해서 추가해요. 별것 아닌 메모 같지만, 짐을 싸다가 이 메모만 한 번 확인하면 전압 걱정은 거의 사라져요. 몇 번의 사고를 겪고 나서야 이런 사소한 정리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알게 됐어요. 지금은 새 전자제품을 살 때도 구매 전에 뒷면 입력 전압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붙었어요.
전압 문제는 한 번 겪어보기 전까지는 좀처럼 실감이 안 나는 종류의 사고예요. 저도 두 번이나 겪고서야 비로소 짐 싸는 순서에 전압 확인을 끼워 넣게 됐어요. 작은 확인 하나가 다음 도시에서의 첫날 저녁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이제는 분명히 알아요. 콘센트 모양이 맞는다고 전압까지 맞는 건 아니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저는 두 번의 탄내를 맡고서야 몸으로 익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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