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를 쓰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져요
생활비가 얼마냐는 질문을 정말 자주 받아요. 그런데 그때마다 대답이 애매해져요.
도시마다 물가 차이가 너무 커요. 어떤 곳에서는 넉넉했던 금액이 다른 곳에서는 빠듯해요.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환율도 매번 걸려요. 같은 도시, 같은 생활인데 환율이 안 좋은 달에는 체감이 확 달라져요. 숫자를 남겨둬도 그해 사정이 섞여서 나중에 비교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져요.
그래서 숫자 대신 다른 걸 말하게 됐어요. 얼마를 쓰느냐보다 어디에 쓰느냐가 저에게는 훨씬 더 오래 남는 질문이더라고요.
고정비가 거의 없다는 것도 이 생활의 특징이에요. 집도 차도 없으니 그쪽 지출은 아예 없어요. 대신 숙소와 이동에 몰려 있어서 그 둘이 그달의 지출을 좌우해요.
그러다 보니 매달 쓰는 돈의 총액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총액이 비슷해도 그 안에서 뭘 줄이고 뭘 남겼는지가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래서 숫자보다 항목을 보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상대는 결국 다시 숫자를 물어봐요. 그럴 때는 그냥 대략의 범위만 말해줘요. 정확한 숫자는 어차피 다음 달이면 또 달라지니까요.
먹는 것에는 아끼지 않게 됐어요
제가 유일하게 안 줄이는 항목이 있어요. 그 도시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에요.
이유는 단순해요. 그 도시를 떠나면 그 맛은 다시 못 만나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에서 그걸 아끼면 나중에 후회만 크게 남더라고요.
건강 문제도 있어요. 컨디션이 무너지면 그날 일도 같이 무너져요. 아낀 식비보다 그날 못한 일이 훨씬 손해였던 적이 여러 번이에요.
한 번은 예산을 줄이겠다고 며칠을 편의점 음식으로만 버틴 적이 있어요. 이틀도 안 돼서 몸이 무거워지고 집중이 안 됐어요. 결국 제대로 된 한 끼를 먹고 나서야 컨디션이 돌아왔어요. 그때 알았어요. 음식을 아끼려다 며칠치 컨디션을 날린 거였어요.
그 뒤로 음식은 예산 삭감 대상에서 뺐어요. 대신 직접 해 먹는 것과 사 먹는 것 사이 균형을 잡았어요. 매 끼를 밖에서 먹으면 그것도 몸에 티가 나서, 하루 한 끼는 숙소에서 만들어요.
숙소에서 만드는 한 끼도 대충 때우지는 않아요. 시장에서 그날 파는 걸 보고 정해요. 그러면 매번 비슷한 걸 해 먹지 않게 되고, 그 지역 식재료를 아는 계기도 돼요.
비싼 곳이 꼭 좋은 것도 아니었어요. 관광객이 몰리는 자리보다 현지 사람들이 줄 서는 곳이 대체로 맛도 낫고 값도 쌌어요. 그런 곳을 찾는 데 며칠 걸리는데, 그 며칠도 그 도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지역에서만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우선하는 것도 기준이 됐어요.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건 굳이 그 도시에서 안 먹어요. 다음 도시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거니까요. 이 기준 하나로 뭘 먹을지가 꽤 빨리 정해져요.
가끔은 이 기준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느낀 적도 있어요. 근처에 저렴한 프랜차이즈가 있는데도 굳이 걸어서 먼 로컬 식당을 찾아갈 때요. 그런데 돌아보면 그 발품이 아까웠던 적은 없었어요.

물건에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둬요
반대로 물건 사는 데는 일부러 거리를 둬요. 옷, 가방, 기념품 같은 것들이요.
처음에는 저도 눈에 띄는 대로 샀어요. 그 나라에서만 파는 수공예품이나 독특한 소품들을요. 그런데 이동이 잦아지면서 물건이 곧 무게라는 걸 몸으로 배웠어요.
한 번은 짐을 싸다가 수화물 초과 요금을 낸 적이 있어요. 가방을 열어보니 절반이 그렇게 산 물건이었어요. 그 초과 요금이면 그 도시에서 제대로 된 저녁을 두 번은 먹을 수 있는 돈이었어요. 그날 공항 카운터에서 계산하며 느꼈던 허탈함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날 이후로 물건 사는 습관을 다시 봤어요.
지금은 물건을 보면 한 번 더 물어봐요. 이게 짐이 되지 않을까, 몇 달 뒤에도 기억할 물건인가. 대부분은 그 질문 앞에서 답이 나와요.
그렇게 걸러내고도 사고 싶은 마음이 남으면 하루를 두고 다시 생각해봐요. 다음 날도 여전히 사고 싶으면 그때 사요. 대부분은 하루만 지나도 마음이 식더라고요.
대신 사진을 찍고 그날 뭘 먹었는지 한 줄 적어둬요. 부피도 무게도 없는데 나중에 꺼내 보면 물건보다 훨씬 잘 떠올라요. 누군가에게 줄 선물은 예외로 두는데, 제가 갖는 건 안 사는 쪽으로 정했어요.
물건을 안 사게 되면서 가게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줄었어요. 구경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같이 줄어요. 돈보다 그 시간이 더 아껴진 것 같기도 해요.
남는 건 결국 경험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선명하게 남는 건 경험 쪽이었어요.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한 끼, 우연히 나눈 짧은 대화, 골목에서 마주친 풍경 같은 것들이요. 그중에는 몇 년이 지나도 냄새와 소리까지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반면 기념품 가게에서 산 물건들은 몇 달 지나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같은 돈이면 오래 남는 쪽에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그때 자리 잡았어요.
예산이 빠듯한 달도 있어요. 그럴 때 제일 먼저 줄이는 건 숙소예요. 조금 좁거나 멀어도 며칠은 견딜 수 있으니까요. 음식은 마지막까지 안 건드려요. 그다음으로 줄이는 건 이동 방식이에요. 급하지 않으면 더 저렴한 수단을 골라요.
이 기준이 모두에게 같지는 않을 거예요. 저에게는 음식이 그 자리인데 다른 분에게는 숙소나 다른 게 그 자리일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뭘 아끼느냐보다 그 순서를 스스로 정해뒀느냐인 것 같아요.
이 순서를 정해두지 않았을 때는 매번 그 자리에서 판단해야 했어요. 그러면 기분에 따라 기준이 흔들려요. 피곤한 날은 다 아끼고 싶고, 여유로운 날은 다 쓰고 싶어지거든요. 미리 정해두니 그 흔들림이 많이 줄었어요.
그리고 아낀 걸 어디로 옮길지도 미리 정해둬요. 그냥 아끼기만 하면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더라고요. 기념품을 안 산 만큼 그 도시에서 한 끼를 더 먹는 식으로요.
가계부를 항목별로 나눠서 적어보고 나서야 이 흐름이 눈에 보였어요. 예전에는 그냥 총액만 적었는데, 항목을 나누니 어디서 새고 어디로 옮겨지는지가 한눈에 보였어요.
얼마보다 어디에
정리하면 이래요. 얼마를 쓰느냐는 매번 달라지지만, 어디에 쓰느냐는 오래 유지되는 기준이었어요.
물건을 모으며 사는 것과 경험을 쌓으며 사는 건 다른 선택이에요. 이동하며 사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후자로 기울게 되더라고요. 쌓을 수 있는 게 물건보다 기억이니까요.
생활비는 늘 한정돼 있어요. 그런데 어디에 집중할지를 정해두면 그 안에서 훨씬 충실하게 쓸 수 있었어요. 음식에 쓴 돈은 그날의 컨디션과 기억으로 남고, 물건을 안 산 만큼은 다음 도시에서의 한 끼로 돌아왔어요.
혹시 생활비를 어떻게 나눠야 할지 막막하시다면, 얼마를 쓸지보다 어디에 쓸지부터 정해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그 순서를 바꾸고 나서 돈 쓰는 게 훨씬 덜 아까워졌고, 지출을 두고 스스로를 탓하는 일도 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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