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무기력한 날이 계속됐어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벌써 2주째 계속되고 있었어요.
돌아보면 일이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평소보다 여유로운 시기였는데도 몸이 안 움직였어요.
아침마다 노트북 앞에 앉아도 화면만 멍하니 보고 있는 시간이 점점 늘었어요. 손은 키보드 위에 있는데 뭘 써야 할지 생각이 안 났어요.
그동안 좋아하던 일에도 흥미가 안 생겼어요. 예전 같으면 신나서 시작했을 프로젝트도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느낌이었어요.
잠도 계속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분명 충분히 잤는데도 눈을 뜨면 다시 눕고 싶었어요. 몸 전체가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무거웠어요.
누가 봐도 뭔가 이상했을 텐데, 정작 저는 그게 뭔지 몰랐어요. 그냥 요즘 조금 피곤한가 보다 하고 대충 넘겼어요.
거울을 유심히 봐도 특별히 아파 보이지는 않았어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속에서는 뭔가 계속 조용히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매일 마시던 커피 맛도 이상하게 밍밍하게만 느껴졌어요. 미각이 문제는 아니었을 텐데, 뭘 해도 예전 같은 즐거움이 없었어요.
처음엔 그냥 피곤한 줄 알았어요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며칠 푹 쉬어봤어요. 그런데 며칠을 통으로 쉬어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쉬는 날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쉬면서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있었고, 막상 일하려면 손이 안 움직였어요.
잠을 더 자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어요. 그때뿐이었고 하루도 안 돼서 금방 다시 그 무기력함으로 돌아갔어요.
운동을 하면 나아질까 싶어서 억지로 몸을 움직여봤는데, 평소보다 훨씬 힘들게 느껴졌어요. 몇 분만 해도 지쳐서 그만두게 됐어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점점 귀찮아졌어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약속을 잡아놓고도 나가기 싫은 마음이 계속 들었어요.
이런 상태가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마음이 아픈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몇 주를 이어갔어요.
주변에 티를 내지도 못했어요. 가족과 통화할 때는 괜찮은 척 밝은 목소리를 냈어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오히려 상태를 더 숨기게 만들었어요.
일의 양은 줄지 않았는데 결과물이 나빠졌어요
그 와중에도 일은 계속해야 했어요. 마감은 그대로였고, 클라이언트는 평소와 같은 품질을 기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결과물이 눈에 띄게 나빠졌어요. 평소라면 안 했을 실수를 하고, 세 번 확인해야 할 걸 한 번만 보고 넘겼어요.
한 클라이언트에게서 처음으로 수정 요청을 몇 번이나 받았어요. "요즘 좀 다른데요"라는 그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심각성을 제대로 느꼈어요.
시간은 더 오래 걸리는데 결과는 오히려 더 나빠지는 이상한 상태가 계속 이어졌어요.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니 몸도 마음도 더 지쳐갔어요.
그 클라이언트를 잃을까 봐 무서워서 더 애를 썼는데, 애를 쓸수록 오히려 더 안 됐어요. 악순환이었어요.
밤늦게까지 붙잡고 있어도 진도는 안 나가고, 다음 날 아침엔 더 지친 채로 눈을 떴어요. 잠을 줄여서 만회하려던 시도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어요.
몸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혹시 몸에 문제가 있나 싶어 병원에 갔어요. 피검사를 포함해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어요.
며칠 뒤 나온 결과는 다 정상이었어요.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분명히 뭔가 잘못됐는데 원인을 못 찾은 느낌이었어요.
의사가 스트레스 관리를 물어봤어요. 요즘 일이나 생활에 큰 변화가 있었냐고요. 딱히 큰 사건은 없었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달 동안 쉬는 날 없이 계속 일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어요. 큰 사건은 없었지만 작은 무리가 계속 쌓이고 있었던 거예요.
혼자 일하다 보니 휴가라는 개념 자체가 흐려져 있었어요. 아파도 쉴 사람이 정해준 게 아니라 제가 정해야 하는데, 그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었던 거예요. 마지막으로 며칠 연속 쉬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안 났어요.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봤어요
병원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 인터넷에 제 증상을 하나씩 검색해봤어요. 무기력, 의욕 저하, 실수 증가, 대인 기피.
검색 결과에 계속 뜨는 단어가 있었어요. 번아웃. 증상 목록을 읽으면서 제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에 다닐 때는 번아웃이 와도 상사나 동료가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요. 혼자 일하면 그걸 알아챌 사람이 저 자신밖에 없는데, 정작 제가 제일 늦게 알아챈 거예요.
돌아보니 몇 달을 쉬지 않고 일한 것, 성과에 대한 압박을 혼자 짊어진 것, 실패를 확인해줄 동료가 없는 것. 이 모든 게 겹쳐서 여기까지 온 거였어요.
이름을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좀 놓였어요. 제가 게을러진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였어요. 원인 모를 무기력함보다 이름 붙은 증상이 훨씬 다루기 쉬웠어요.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웠어요
번아웃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건 빽빽했던 일정을 비우는 거였어요. 급하지 않은 일은 다 미루고 일주일을 통으로 쉬었어요.
처음엔 쉬는 것도 어색했어요. 뭘 해야 잘 쉬는 건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연습부터 차근차근 했어요.
망설이다가 클라이언트에게는 사정을 간단히 알렸어요. "컨디션 관리를 위해 이번 주는 신규 요청을 잠시 쉬어갑니다"라고요. 다들 이해해줬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조금씩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예전과 같은 속도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매일 의식적으로 노력했어요. 천천히, 아주 조금씩만 늘려갔어요.
그리고 매주 하루는 완전히 일을 쉬는 요일로 정했어요. 몇 달째 없었던 이 하루가 생기고 나서 컨디션이 조금씩 돌아왔어요. 그 하루만큼은 노트북을 아예 다른 방에 치워두는 것도 도움이 됐어요.
지금은 신호를 미리 알아채요
정리하면 이래요. 저는 몇 달 동안 제 상태를 확인할 생각조차 안 하고 계속 달리기만 했어요.
혼자 일하면 아무도 "괜찮아?"라고 물어봐 주지 않아요. 그 질문을 제가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데, 그걸 놓치고 있었어요.
그 뒤로 지금은 지금은 몇 주에 한 번씩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물어봐요. 요즘 일이 재미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사람 만나는 게 귀찮지 않은지를 하나씩 짚어봐요.
그리고 그중 두 개 이상이 "아니오"라는 답이 나오면 그날 바로 일정을 조정해요. 예전처럼 몇 달을 참지 않고, 초기 신호에서 멈추는 거예요.
혹시 이유 없이 무기력한 날이 계속되신다면, 그게 게으름이 아니라 신호일 수도 있어요. 저는 그 신호를 2주가 지나서야 알아챘고, 다음부터는 훨씬 빨리 알아채려고 해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그것 하나가 결국 오래 일할 수 있는 방법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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