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퉁퉁 붓고 열이 오르는데 약국 진열대 앞에서 아무 글자도 못 읽었어요. 손짓 발짓으로 20분을 버틴 끝에 약 하나를 겨우 손에 쥐었어요.
증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목이 조금 칼칼하다 싶더니 그날 아침엔 아예 침을 삼키기도 힘들 정도로 부어 있었어요.
숙소 근처 약국을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막막해졌어요. 진열장에 붙은 라벨이 전부 현지어라 어떤 게 감기약이고 어떤 게 소화제인지 구분조차 안 됐어요.
번역 앱을 켜고 증상을 입력해서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정작 목이 아프다는 단어를 어떻게 검색해야 할지부터 헷갈렸어요.
겨우 문장 하나를 완성해서 화면을 내밀었는데, 약사님이 그걸 보고 다시 뭔가를 빠르게 되물으셨어요. 그 말은 또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결국 목을 손으로 감싸고 삼키는 시늉을 하며 아프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어요. 아이들이 하는 몸짓 놀이처럼 되어버렸지만 그 방법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약사님이 그제야 알아들으셨는지 진열대에서 상자 두 개를 꺼내 보여주셨어요. 그런데 이번엔 그 두 개 중 뭘 골라야 할지 제가 판단할 수가 없었어요.
가격표를 보고 그나마 익숙한 성분 이름이 적힌 쪽을 골랐어요.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 봤던 성분명이 어렴풋이 기억나서 그걸 기준으로 삼은 거예요.
계산하고 나오면서도 이게 정말 목감기에 맞는 약인지 확신이 안 섰어요. 그저 아무거나 사 들고 나온 것 같은 찜찜함이 남았어요.
숙소로 돌아와 상자에 적힌 성분표를 사진으로 찍어 번역기로 다시 돌려봤어요. 다행히 목감기 계열 성분이 맞았지만, 그 확인을 약국이 아니라 숙소에 와서야 할 수 있었다는 게 좀 허탈했어요.
이런 식으로 매번 운에 기대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그날 처음 들었어요.
그날 산 약을 먹고도 이틀은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어요. 혹시 잘못 고른 건 아닐까 싶어서 결국 근처 병원까지 찾아갔어요.
병원에서는 그나마 접수처 직원이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증상을 겨우 전달할 수 있었어요. 약국에서 겪은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진땀나는 시간이었어요.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초조했어요. 제 이름이 현지어 발음으로 불리면 못 알아들을까 봐 계속 문 쪽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다행히 직원분이 번호표를 따로 보여주며 불러줘서 그 걱정은 다행히 기우로 끝났어요.
진료를 받고 나서야 처음 산 약이 방향은 맞았지만 용량이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사실을 병원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조금 허탈했어요.
새로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서야 몸이 서서히 회복됐어요. 결국 반나절 넘게 헤매고 나서야 제대로 된 약을 손에 넣은 셈이었어요.
나라마다 약국 시스템도 다 달랐다
어떤 나라는 흔한 감기약도 처방전 없이는 살 수 없었어요. 약사에게 아무리 증상을 설명해도 병원부터 가라는 대답만 돌아왔어요.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라면 병원에서만 처방받을 법한 약도 약국에서 그냥 살 수 있었어요. 기준이 나라마다 이렇게 다를 줄은 겪어보기 전엔 몰랐어요.
약 이름 자체도 나라마다 제각각이었어요. 같은 성분인데 상표명이 완전히 달라서, 익숙한 이름만 찾다가는 필요한 약을 영영 못 찾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용량 표기 방식도 헷갈렸어요. 어떤 나라는 밀리그램으로, 어떤 나라는 다른 단위로 적혀 있어서 같은 약인지 아닌지 비교하는 것부터 일이었어요.

약국 운영시간도 나라마다 달라서, 저녁에 문을 닫는 곳이 많은 나라에서는 밤에 아프면 꼼짝없이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한 번은 야간 당직 약국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못 찾고 그냥 참고 잔 적도 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시청 홈페이지에 그날그날 당직 약국 정보가 올라와 있었는데, 그걸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보험 적용 여부도 나라마다 달라서, 어떤 곳에서는 약값이 생각보다 훨씬 비싸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같은 감기약인데 나라를 옮길 때마다 가격 체감이 이렇게 다를 줄 몰랐어요.
그때마다 매번 처음부터 새로 알아가야 하니 시간도 에너지도 꽤 소모됐어요. 아플 때는 그 에너지조차 넉넉하지 않은데 말이에요.
알약과 물약 중 어떤 형태가 일반적인지도 나라마다 달랐어요. 어떤 나라에서는 감기약도 대부분 가루약 형태로 나와서, 익숙한 알약 모양만 찾다가 한참을 헤맨 적도 있어요.
복용법 안내도 전부 현지어라, 하루 몇 번 먹어야 하는지조차 그림으로 유추해야 했어요. 상자에 그려진 해와 달 그림을 보고 아침저녁 구분을 겨우 짐작했어요.
알레르기 성분 표기도 나라마다 표기 방식이 달라서, 평소 안 맞는 성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매번 새로운 일이었어요.
지금은 미리 준비해둔다
그날 이후로 새 나라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하나 생겼어요. 기본 상비약을 몇 가지 사서 미리 챙겨두는 거예요.
감기약, 해열제, 소화제, 상처 연고 정도는 아프기 전에 미리 사둬요. 아플 때 급하게 찾는 것보다 멀쩡할 때 여유 있게 고르는 게 훨씬 나았어요.
자주 쓰는 증상 단어와 성분명은 따로 메모장에 정리해뒀어요. 목 아픔, 두통, 소화불량 같은 단어를 미리 번역해서 저장해두니 급할 때 훨씬 빨리 대응할 수 있었어요.
평소 먹는 약의 성분명도 영어로 사진 찍어 휴대폰에 저장해뒀어요. 상표명이 안 통해도 성분명을 보여주면 훨씬 정확하게 통했어요.
그 나라에 사는 교민 커뮤니티나 여행 카페에서 어느 약국이 외국어가 통하는지 미리 검색해두는 것도 습관이 됐어요. 실제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몸 상태가 괜찮을 때 근처 24시간 약국이나 야간 당직 약국 위치도 미리 확인해둬요. 아플 때 검색할 여유가 없다는 걸 이미 겪어봤으니까요.
평소 먹는 약에 알레르기 반응이나 부작용이 있었다면 그 내용도 따로 메모해서 저장해둬요. 새 나라에서 약을 살 때 그 메모를 그대로 보여주면 확인 과정이 훨씬 빨라졌어요.
복용법 그림을 미리 익혀두는 것도 도움이 됐어요. 해와 달 그림, 숫자 표기 방식을 몇 번 겪고 나니 새 나라에 가서도 대략 짐작이 가능해졌어요.
동행이 있을 때는 서로의 상비약 목록도 공유해둬요. 한 사람이 못 챙긴 약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자주 있었어요.
그 뒤로 몇 번 다시 아팠지만 예전만큼 당황하지는 않았어요. 준비해둔 상비약이 있으니 약국을 급하게 찾아 헤맬 일도 줄었어요.
여행자보험 약관에 처방전 없이 산 약도 환급이 되는지 미리 확인해두는 습관도 생겼어요. 나라마다 조건이 달라서, 영수증만큼은 어디서든 꼭 챙겨두는 편이에요.
몸 상태를 기록해두는 습관도 같이 생겼어요. 언제 무슨 증상으로 어떤 약을 먹었는지 짧게 적어두니, 비슷한 증상이 다시 왔을 때 훨씬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어요.
그날 약국에서 겪은 20분이 지금은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됐어요. 그때는 손짓 발짓이 최선이었지만, 지금은 그 순간을 다시 안 만들려고 미리 준비해두는 쪽을 택했어요. 아플 때 필요한 건 결국 운이 아니라 대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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